세계 최대 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설립자 | 조용기 목사 기념관을 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개신교 목사님을 떠올려보면 단연코, 조용기 목사님이 떠오릅니다.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설립하였고 생전에 여러가지 일들도 많았지만, 많은 업적을 남기신 한국 개신교의 큰 별과 같은 분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 것 같습니다.

1. 조용기 목사

조용기 목사님은 1936년 2월 14일 울산에서 태어나셨으며 2021년 9월 14일 1년에 걸친 뇌출혈로 투병중, 서울대병원에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조용기 목사님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이름이 많이 알려진 개신교 목사님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세계 최대 규모인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설립자였기 때문입니다. 목회 초반에는 한국교회들에게 순복음교회는 ‘이단’이라며 공격도 많이 받았다고 하네요. 당시 그는 다른 한국교회들과는 다르게 ‘성령충만’, ‘방언’, ‘마귀를 쫓는 사역’들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후 한국교회들에게 인정받아 열정적으로 활동했습니다.

1981.1.11일 조용기 목사 설교

또한 그는 일어와 영어에 능숙해서 해외를 수없이 다니며 선교활동을 하였고 개신교 선교에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미국의 뉴욕시는 조용기 목사 초청 뉴욕성회를 기념해 5월 18일을 ‘조용기 목사의 날’로 제정하기도 했으며 북한의 평양에는 주민들을 위한 의료혜택과 치유목회의 사역을 위해 조용기목사 심장병원을 계획하고 설립 중에 있기도합니다.

2. 여의도순복음교회

2008년부터는 이영훈 목사가 당회장으로 사역하고 있으며 순복음선교회, 오산리 금식기도원, 한세대학교 등 다수의 부설기관을 운영중입니다. 국민일보와 신앙계의 모기관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죠. 현재 일요일에는 1부 (오전 7:00)를 시작으로 6부 (오후 5:00)까지 예배가 있으며 온라인 생중계하고 있습니다.

2023년-12월의-밤-여의도순복음교회
크리스마스를 맞아 예쁘게 조명을 밝힌 여의도순복음교회

많은 분들이 순복음교회의 세금 문제를 거론하고 있지만, 1979년부터 헌금에 대한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고 있으며 순복음교단 소속 목회자들은 3대 보험에 가입되어 있습니다. 그간 늘 교회의 세금납부를 가지고 공격하는 여론들이 있었지만, 여의도순복음교회는 2008년에 처음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그 이유는 미자립교회나 소형, 어려운 교회들에게 영향을 미칠까 염려해 공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현재 교회 예산의 1/3을 경제적 약자들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는 규칙을 가지고 있으며 구제와 선교에 사용하는 금액이 1년에 400억원 가량인 대한민국 개신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교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3. 조용기 목사 기념관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 1층에는 조용기 목사님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관이 있습니다. 기념관이 오픈된 시간에는 언제든지 방문해서 실제 목사님이 사용하시던 방과 직접 메모하신 글들, 사진, 유품들을 관람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입니다.

이제야 목사님이 돌아가신지 시간이 흘러서 이전처럼 성도들이 많이 방문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목사님의 흔적과 생활하셨던 모습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공간이라 새롭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내에-조용기목사-기념관-모습

이곳은 목사님이 사용하시던 집무실을 복원해 놓은 것 같습니다. 집에서 자주 입으시던 카디건과 서적들, 책상과 명패들을 확인할 수 있고 이전에 설교하셨던 영상들이 플레이되고 있어서 예전에 어떤 모습으로 계셨겠구나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조용기목사-기념관-내부에-전시된-모습

한쪽 벽면에는 조목사님이 그동안 살아오셨던 발자취를 시간대별로 기록되어 있고, 수많은 나라들을 다니면서 선교하셨던 사진들이 잘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여러나라에서 직접 신유사역을 하셨던 모습들이나 전설적인 목사님들과 함께 사역하셨던 모습들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생전에-조용기-목사가-사용한-물건들

제가 가장 눈여겨 보게 된 것은 위의 사진들입니다. 목사님이 생전에 즐겨 사용하시던 패션 아이템들과 물건들인데, 그중에서 우황청심환이 가장 눈에 띕니다. 수만명의 회중들 앞에서 60여년간이나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하셨던 목사님! 하지만 그런 목사님도 늘 설교하기 전, 강당에 오를 때면 늘 긴장되었다고 말씀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60여년간 긴장되는 그 자리에 매주마다, 매주에 몇번이나 강단에 오르실 때 얼마나 기도를 하셨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옵니다. 평생을 선교와 복음을 위해 노력하신 조용기 목사님, 어릴적 엄마의 손에 이끌려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철야예배를 함께갔던 기억. 엄마 무릎을 베고 누워서 목사님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었던 그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래도 조용기 목사 기념관을 통해 잠시나마 그때의 기억, 조용기 목사님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어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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