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감을 찾다가 티스토리에서 제공하는 ’34개의 질문으로 돌아보는 나의 2024년’이라는 글귀가 내 눈에 들어왔다. 물론 사람들은 전혀 관심 없는 이야기겠지만, 오늘은 오롯이 나를 위한 글쓰기를 하겠다고 다짐하고 주제를 집어 들었다.
올해 나를 칭찬한다면?
여러 가지 토픽이 있었지만 지금 나의 상황이 하나도 잡히는 것 없고 보이는 것 없으며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한 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일까? ‘올해 나를 칭찬한다면?’이라는 주제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나를 더 잘 칭찬하기 위해서 ‘올해 나는 무엇을 했나?’를 돌아보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1-2월
나는 방송을 만드는 PD라는 직업으로 살아왔다. 교양 프로그램에서 예능 오디션 프로그램까지 닥치는대로 일했던 것 같다. 회사가 큰 타격을 받기 전까지 말이다.
회사가 타격을 받고 밖으로 나와서 알바처럼 올해 초반까지 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보통은 1편만 맡아서 하지만 2편을 한꺼번에 맡아서 정말 바쁘게도 다녔던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을 새로 만나고 인터뷰하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오랜만에 행복했던 것 같다.
한동안 쓰기만 했던 돈도 꽤 벌고 말이다.
3-4월
몇년 전부터 가족들과 계속 이야기해왔던 가족 세계여행을 떠나기 위해 집 안의 모든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집안 구석구석에 뭐 그리 물건들이 많은 지, 버릴 것도 당근에 팔 것들도 많았다.
올 초까지만 해도 크게 마음 변화가 없었지만,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하다보니 이젠 정말 가는 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초조하거나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보다 더 큰 마음은 설렘이었다.
더 가족들과 함께 끈끈하게 뭉치는 시간이었고 아내와도 그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더 많이 할 수 있기도 했다.
5-12월
5월 9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한 우리는 12월까지 7개월 동안 총 6개의 나라(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하와이,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등)를 여행했고 18개의 도시를 여행했다.
7개월 동안 싸우기도 많이 했고, 여행을 중단한 채 돌아올 뻔한 적도 있었고 카메라 장비가 든 가방을 잃어버린 적도 있으며 숙소 키를 놓고 밖에서 잠긴 적도 있었다. 손바닥만한 바퀴벌레로 기절할 뻔한 적도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어려움과 고생을 이겨내고 지금은 다시 한국이다. 이 여행을 위해 검정고시를 선택한 중학생 아들의 시험을 위해서이다. 여행하면서 공부하는 것이 절대로 쉽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곁에서 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걸 알았다.
다른 친구들 3년 공부하는 내용을 10개월만에 졸업한다는 것이 쉽지 않으니 말이다. 어쨌든 지금은 한국에 머무르고 있다. 현재 집은 팔고 없어서 장모님댁에서 신세를 지고 있지만, 아들의 시험이 끝나면 우리는 다시 해외로 나갈 계획을 하고 있다.
그래서 뭐를 칭찬할건데?
우리 가족은 쫄보들의 모임이다.
- 쫄보 1(아빠)
- 영어울렁증이 있어서 노란머리 외국인들과 이야기하는 걸 무척 꺼린다. 세계여행에서는 매우 치명적인 단점이다.
- 쫄보 2(엄마)
- 벌레 공포증, 고소공포증을 가지고 있다. 말레이시아 숙소에서 손바닥만한 바퀴벌레를 보고 기절할 뻔했으며 바투동굴의 272계단을 오르다가 몇 번이나 까무라칠뻔 했을 정도이다.
- 쫄보 3(아들)
- 날파리, 아무리 작은 벌레도 무서워서 건드리지 못한다. 소리에 예민해서 조금만 큰 소리가 나면 무서워하거나 두려워 할 때가 많다. 또한 음식이 조금만 입맛에 맞지 않으면 뱉어내곤 한다.
어떤 일이 발생할 지 한치앞도 모르는 세계여행에서 쫄보들은 두려움이 더 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7개월 동안 큰 문제 없이 건강하게 여행을 했다. 이건 그들을 안전하게 잘 보호했던 쫄보 1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칭찬한다!